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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 안동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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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28회 작성일 22-03-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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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역사마는 기록에 따르면 3세기경, 중국 원산에서 약초로 재배되었고 산지에서 자생하였다.
그 후 우리나라, 일본으로 전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약 100여 년 전부터 산지, 농가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안동에서 많이 생산되며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 서동요의 마


백제30대 무왕(武王, 600-641)의 어릴 때 이름은 서동(마 캐는 아이)이며, 생업으로 항상 마를 캐고 팔아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서동이 신라26대 진평왕(眞平王, 579-632)의 3째 딸 선화공주가 절세의 미인이란 소문을 듣고 아내로 맞이하고자 신라로 와서 맛있는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주며 부르게 한 노래가 바로 서동요이다. 이때 아이들에게 준 '마'의 맛이 너무나 좋았기에 아이들은 서동이 시키는 대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마는 삼국시대부터 먹어온 식물이다.

사명대사의 마


금강산을 떠나 1,500명의 승군을 이끌고 평양성 탈환을 위해 달려가던 사명대사는 적군의 식량과 무기를 갈취당해서 굶주리고 있는 군사들을 위해 고민했다. 깊은 밤, 잠을 못 이루던 사명대사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모래밭을 무심코 걷다가 발 뿌리에 차이는 덩이를 당겨보니 고구마 같은 뿌리가 뽑히는 것이었다. 이것을 급히 비장과 수하스님을 불러 밤새 채취하였고, 비로소 신비의 산약 '마'를 만나게 되었다.
마죽을 배불리 먹은 군사들은 다시금 원기를 회복하였고, 적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 후 조선의 국운을 건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마로 인해 지금도 사찰에서는 마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마


중국 춘추전국시대, 강대국의 침략을 받은 한 약소국의 병사 2,000명이 산 속으로 쫓겨났다. 산을 포위한 강대국 군사들은 약소국 병사들이 굶어죽었을 것이라 예상하고 산 속으로 진격하지만 오히려 크게 패하고 말았다.
산 속에서 약소국 병사들이 먹은 것은 바로 여름에 하얀 꽃이 피고 굵고 긴 뿌리가 있는 덩굴식물의 하나였다. 약소국 병사들은 산 속에서 이 식물의 뿌리를 캐먹고 힘을 길렀고, 이것은 산우(山遇)라고 불렀다. 이것이 허약한 몸을 튼튼하게 하는데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산에 있는 몸을 보호하는 약이라는 말에서 '산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중국에서는 '마(산약)'을 '서여'라고 불렀다. 1550년 전 수나라 떄 '서여'라는 황제가 백성들이 황제의 이름을 거침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신성한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마의 이름을 '산약'이라고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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